독립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짐을 짊어질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.
독립의 하기 전 엄마아빠의 집에서 살던 나는 정말 온실속의 화초였다. 매 달 수도세, 전기세, 가스비, 관리비, 그리고 가장 무서운 월세까지 나를 숨막히게 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.
샤워를 오래 하는 것은 취향이라 여겼고,
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으면 방에 불을 켜놓을 수 있는거라 생각했다.
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따듯한 침대가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에 침대 온열전원을 켜놓은 채 외출을 하는 것도 '에이 겨울만 좀 더 내자~' 라고 생각했다.
내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. 음, 조금 더 정확하게는 그 작은 것들이 모여 매 달, 아빠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. 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.
나름 그래도 모아둔 돈들이 있었기에, 독립 후 초반은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중개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, 내가 사는 집에는 정수기가 없어서 물을 사두지 않으면 당장 마실 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, 엄마아빠가 보고싶어서 내 집에 가는데도 왕복 10만원이란 돈 앞에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. (지금이야 보고싶으면 어떤 교통수단을 타야할 지 고민도 하지 않지만,)
이 때는 내가 진짜 돈 10만원에 집에도 못내려가는 이렇게 찌질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는 초라함과 자괴감을 느꼈다.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가장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엄마, 아빠는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에서, 나와 내 동생이 지내는 온실을 항상 쾌적한 상태로 만들어줬을까 하는 생각에 고마움, 미안함. 그 큰 사랑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생각에 매일밤을 눈물로 지새웠던 것 같다.
엄마는 종종 내게 너도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거라며 "겪어보면 다 알게된다."라는 말을 해줬다.
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.
스물아홉에도 여전히 나는 철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독립을 하고나서부터 아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.
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것, 잠을 자는 동안에도 돈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어른의 세상에 발을 들인 것 아닐까.
어른의 일은 다 이렇게 어려운 것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앞서지만, 하나 하나 넘어가면서 엄마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는 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도 생긴다.
어른이 되고싶다면 독립을 해봐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. 하지만 가끔 울산에서 친구들이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"서울이나 올라갈까?" 하면서 연락이 오면 진짜 신중하게 고민을 해보라고 말해준다. 아무리 모아둔 돈이 있다고 해도 살아가다 보면 녹록치 않은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.
그렇지만, 독립을 하고나서야 '진짜 어른'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나의 주장이다.
쉽지 않다- 어른의 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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